나의 이야기

[스크랩] 스리랑카. 싱가포르 성지순례기 (7편)

목탁 2018. 1. 31. 09:49



스리랑카. 싱가포르 성지순례기 (7)

 

해변가의 풍경 자못 이국적이다. 밤새 철석이는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어제 늦은 시각이라

바다를 즐기지 못한 일행들은 늦은 아침 출발 덕분에 아침부터 인도양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여유를 즐겼다. 스리랑카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도인 콜롬보로 향했다.

인구 60만의 콜롬보는 스리랑카 섬의 서해안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8세기 이후 아랍 상인들이 정착

했으며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 영국인들이 차례로 섬에 정착하여 발전시켰다. 1815

스리랑카인 족장들이 실론 섬 중심부에 있는 캔디 왕국의 왕을 몰아내고 영토를 영국에 양여하면서

실론 섬의 수도가 되었다. 1948년 스리랑카 독립 이후 서구 영향권에서 차츰 벗어나게 되었다. 지금은

실론 섬의 상업 중심지로 남아 있다. 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답게 해안선 철도가 있다는데 우리들은

시간상 열차를 타는 호사는 누리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스리랑카는 원래 지진도 없고 태풍도

없는 나라인데 쓰나미때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멀리서 밀려온 거대한 파도 때문인데 방파제 같은 시설

이 전혀 없고 그냥 해안선을 따라 도로도 있고 건물도 있는 형식이었다.

     

콜롬보로 가는 길에 가이드의 말로는 머지 않아 스리랑카도 이슬람 국가로 될수도 있다고 한다. 스리

랑카는 국기에도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의 공존을 상징하듯이 불교국가이면서도 다양한 이웃

종교와 더불어 있지만 이슬람인들은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 반면, 불교인들은 출산율이 떨어져서 걱정

이라고 한다. 이슬람교인이 8%나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웃어넘길 일은 아닌 듯 했다. 이슬람교도들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콜롬보에서 들린 사원은 석가모니 부처님 재세시에 부처님이 직접 다녀간 유서깊은 사원으로 보석의

자를 두고 두 왕이 다툼을 하다가 부처님의 중재로 다툼을 멈추었다고 하며 그 보석의자는 지금도

안에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사원은 보리수와 불탑과 불상이 잘 모셔져 있으며, 사원안에 벽화는 19세기경 제작된 벽화로 아주

섬세하게 부처님 일대기를 비롯한 다양한 벽화를 볼수 있었다. 한쪽에 보살상처럼 생긴 아래서 한

스님께서 명상을 하시기에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스리랑카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후

우리처럼 다음 부처님은 미륵불이 탄생하시는데 그 시기는 우리와 차이가 있어 5,000년이라고 한다.

그들이 믿고 있는 미륵부처님이 탄생하시기전 미륵보살상인 것이다.



      


사원은 보리수와 불탑과 불상이 잘 모셔져 있으며, 사원안에 벽화는 19세기경 제작된 벽화로 아주

섬세하게 부처님 일대기를 비롯한 다양한 벽화를 볼수 있었다. 그날은 원래 큰 법회가 있는 날은 아닌

데 한 마을에서 축제를 하는 것인지 신도들도 많고, 부처님 치아사리를 이운할 때 여는 축제 같은 페라

헤라 축제를 여는 날 같았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부터 대학생까지 나름대로 전통 복장을 하고 갤러

니아 사원으로 입장하는 장면이 정말로 아름다웠고 가슴 뭉클했다. 외국 순례객인 우리들에게는 뜻하

지 않은 행운이었다.축제에 동참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해맑고 표정이나 동작들이 순수하고 진지했다.

 


콜롬보 마지막 여정으로 시내의 강가라마야 사원을 찾았다. 19세기에 지어진 사원은 거대한 불교

박물관 같아 보였다. 콜롬보의 베일라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 강가라마야 사원의 "강가라마야"

"물을 다스리는 임금"이란 뜻으로 1885년 스리랑카 불교 재건운동을 이끈 '히카두웨 스리 나카야'

스님이 세웠는데 당시 꺼져가던 불교를 되살리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조계사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된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하여 신도뿐만 아니라도 수많은 관광객

들도 찾는 곳이이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공간이 넓은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한국의 조계사가

그러하듯이 비좁은 공간이지만 서울 시내에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하여 한국 불교의 상징적인

곳으로 통하는 조계사처럼 보였다. 단지 조계사와 다른 점은 주변에 인사동과 연결되어 볼거리가

풍부한데 견주어 강가라마 사원은 달랑 사원만이 들어서 있었는데 사원 안에 볼거리가 매우 풍부하

. 각국에서 모셔온 여러 가지 형태의 불상이 있어서 불교박물관 역할도 하는 듯 했다. 사원 중심

에는 거대한 보리수가 있어서 보리수 나무에 감로수 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우리 일행들도 보리수

 나무에 물을 주는 공양을 하였다. 특이한 경험이기도 하였다. 부처님의 모발사리가 안치되어 있었다.

 



스리랑카 여행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싱가포르로 향하는데 스리랑카

공항은 출국절차가 까다롭다. 테러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7군데를 거치면서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하니 3시간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늦지 않을 수 있다. 공항의 시스템은 까다롭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공항에서 여유롭지 못하니 그 유명한 실론 홍차도 구입하지 못했다.


스리랑카에는 시암종, 아마라뿌라종, 라만냐종 등 3개 종파가 있으며 스님들은 약 3만명 정도라고

한다. 삭발할 때 눈썹까지 미는지, 가사를 입을 때 양쪽 어깨를 다 덮는지 여부 등 약간의 관습 차이만

있을 뿐 3개 종파 모두 상좌부 전통으로 계율이나 교리에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하며 , 상좌부 불교국가

 중 미얀마는 수행, 태국은 계율, 스리랑카는 교학의 전통이 강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부처의

가르침은 열반 후 첫 결집에서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으로 정리돼 스님들의 암송으로 전승되다가

기원1세기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싱할리어로 기록돼 문자화됐으며 5세기에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 팔리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스리랑카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해 온 역사에 대단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스리랑카는 가난하지만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불교

 사라졌지만, 450년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외세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2,300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불교가 유지되고 있고, 상좌부 불교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전통있는 불교국가이다



어디를 가도 불상을 마주 할 수 있고, 아침에 일과 시작전 간단한 예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언제든지

절에 찾아가서 공양물을 올리고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사람들, 우리나라가 백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요즈음은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이 넘쳐나는데 비해 그들은 진정으로 하연 옷을 사랑하고 착용한다.

나처럼 약간 배가 나온 사람이 멋진 남성의 표준이 되고, 여자들도 다이어트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나라. 국민소득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

인도양의 눈물이 아닌 인도양의 보석 같은 나라이다.



출처 : 충북불교를 사랑하는 모임
글쓴이 : 이암 전철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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