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자원봉사대회에서 유공자 표창을 받고서
11월 28일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청주시 자원봉사자 대회에서 자원봉사 유공자 표창을 청주시장으로부터 수여받았다. 소속은 청주불자봉사단으로 명기되었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청주불자봉사단을 2005년 10월 창단하고 지금까지 무려 14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군생활을 하면서 약관의 나이인 36세에 육군중령 계급장을 달고서 더 이상 진급에 미련을 떨쳐버리고 나니 51세 퇴직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동안은 잊고 지내다가 하루하루 군복을 벗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전역후에 무엇을 해야하나? 하는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러나 그 고민의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방향을 정하니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한 포교활동과 봉사활동으로 가닥이 잡혔다. 1997년 대전에 있는 불교대학을 다니다가 인사이동으로 98년도 2월에 원주로 이동하는 바람에 포교사고시를 응시하지 못하였지만 그곳에서 36사단 불교신도회장, 증평으로 이동해서 37사단 불교금강회장을 하면서 포교의 기틀을 잡았지만 봉사의 방향은 희미하기만 하였다. 2004년 공로연수 기간부터 사회복지를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입학해서 공부를 하면서 봉사의 필요성을 절감 하였고, 2004년 청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자원봉사부터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2005년 충북불교대학 교무처장의 소임을 보면서 몇몇도반들과 뜻을 나누고 졸업생 일부와 재학생 들을 중심으로 용화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10월 9일 창단을 하고 지역봉사 위주로 하면서 주중과 주말봉사단으로 나누어서 시설방문위주 봉사를 2년여 동안 진행을 하다보니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조계종 연합봉사단도 만들고 일부 사찰들도 불교봉사단체 를 만들어서 봉사활동에 참여를 하였다. 2008년 독자적인 불교봉사활동을 하자는 단원들의 요구에 따라 독거어르신 반찬봉사를 하기로 큰 틀을 정하고 반찬 만드는 장소를 쳥주청원불교연합회 사무실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불교연합회 사무국장이라는 소임을 보고 있었으니 사무실 사용에는 스님들도 허락해주셨기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수도가 얼어서 봉사가 어려울것이라는 조언에 따라 포교사단과 함께 새로운 사무실을 구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포교사들도 충부포교사회라는 이름에서 충북지역단으로 독립을 꿈꾸고 있던 시기라 서로 협조하기로 하였고, 포교사의 대부분의 인원들이 봉사단에 합류되어 있어서 13기 포교사들이 1천만의 보증금과 스님들과 포교사, 봉사단원, 후원자들이 1500만원을 모아서 시설을 정비하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천동 사무실에서 반찬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무실이 별도로 준비되는 과정에 작은 부작용들이 발생하여 봉사단은 총회를 열어서 “청주불자봉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었다. 지금도 적극적인 봉사자 80여명과 다수의 후원자들의 뒷받침 아래 매주 20~30명의 단원들이 나와서 50여명의 독거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만들어서 배달해드리고 일년에 한번씩 김장을 담아서 나눠드리고, 중앙공원에서 70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일년에 두 번을 육개장을 대접해드리고 있고, 일부인원은 미원에 있는 정토마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저런 활동으로 금년에도 청주불자봉사단은 우수자원봉사단체로 선정되어 표창패와 상금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모두 열심히 활동해준 봉사단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
함께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 봉사단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창단초기부터 10여년을 함께 한 고참 봉사자님들, 그리고 새로운 봉사자님들도 빠른 적응력을 발휘해서 화합하면서 즐겁게 봉사하는 봉사단은 늘 잔치집 분위기이고 행복 바이러스가 넘친다. 또한 그동안 단장으로서 소임을 성실히 수행해준 임환구 거사님, 김두한 거사님, 이우영거사님, 정말로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솔선수범하면서 밝은 미소를 보여주시는 현 이진희단장님께도 수고하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군복을 벗은지 14년의 세월, 기본적으로 사회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이시종 충청북도 지사님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무보수로 4년동안 청주청원불교연합회 사무국장을 한 결과이기도 하니 그것 또한 봉사라 칭할 수 있으리라.
불자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전역후에도 10년동안 37사단 호국충용사 장병들을 위해서 봉사와 포교를 겸한 공로로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과 37사단장 감사장을 받기도 하였다. 포교도 봉사도 내 시간 내서 내 돈 들여가면서 하는 일이니 상받기기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시작한 초등학교 배움터 지킴이 자원봉사 활동도 벌써 햇수로는 9년째이다. 꼬마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돌봐주는 일이라 즐겁기도 하고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하니 나름대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인기 짱”인 지킴이 아저씨 또는 지킴이 선생님으로 불린다. 학부모님들의 추천으로 학교와 충북교육감으로부터 감사장과 감사패를 받았으니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꼬마들과 어울리면서 ‘마이쮸’나눠주는 포대화상 노릇을 해야 할 것 같다.
2010년 1월 13일 조선일보 기사에 베이비무머시대의 제 2의 인생란에 “2005년 육군 중령으로 제대한 전철호(55·충북 청주)씨는 자신의 역할을 글쓰기와 봉사활동에서 찾았다. 얼마 전 수필집을 냈고, 앞으로 불교 성지순례기 등도 출간할 계획이다. 충불사(충북 불교를 사랑하는 모임·회원 834명)를 이끌고 있는 전씨는 한 달에 4번 정도 불자들을 모아 성지순례·등산을 한다. 월 5~6회는 독거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하는 봉사활동이며, 무료급식 봉사에도 참가한다. 이런 일상에서 경험한 일들은 지방 일간지에 칼럼으로 풀어내고 있다. 전씨는 청주시 평생학습관의 '모범 학생'이다. 일주일에 2번은 컴퓨터(포토샵·플래시), 2번은 한자 수업을 듣는다. 전씨는 "한자 1급 자격증을 따면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에게 한자 지도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고, 컴퓨터는 홈페이지 관리를 위해서 배운다"고 말했다.” 라고 실린 적이 있다. 가끔씩 그때의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나름대로 평가해보면 크게 어긋나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당시 계획보다는 더 많은 일들을 벌리면서 때로는 상처 받기도 하였고, 때로는 가슴 복찬 보람도 느끼기도 한 것 같다.
봉사는 봉사받는 사람보다 봉사하는 사람이 즐겁다고 한다.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면서 허드렛일을 하고, 큰 행사에 나가서 작은 일을 맡아서 자리를 지키고, 병원법당에서 환자들 방문을 안내하고, 정토마을에서 말기암 환자들을 목욕시키는 일을 거들고, 독거어르신들에게 몇가지 반찬이지만 만들어서 나눠드리는 일을 하면서 삶을 배우고 깨닫는 것도 많았다. 지금까지의 봉사실적이 2,900시간 정도 된다. 어제 행사장에서 5,000시간 인증서를 받는 분들이 있었다. 14년에 2,900시간이니 1년에 200시간 정도를 봉사한 셈인데 앞으로 10년을 해야 5,000시간이 될듯한데 까마득하다. 봉사단에 계신 어르신께서 "봉사하다가 죽는게 소원"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고 건강이 허락하면 봉사의 손길을 놓고 싶지는 않은 심정으로 봉사에 임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제 독립된 살림터를 준비하고 있는 청주불자봉사단도 서로 힘을 모아서 새살림 잘 차리고 화합 소통하면서 행복한 봉사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불교와 봉사로 인연 맺은 모든 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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